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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한 번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공연장에서 본 적은 있지만 마주보고 앉아 얘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궁금한 것도 많았구요. 그래서 연락을 했고 만났습니다. 덤덤하게 만나서는 편하게, 때로는 재밌게, 때로는 아리송하게 얘기나눴습니다. 매니저 이다오씨가 옆에서 이야기를 거들어서 더욱 좋았습니다.
일시: 2009년 11월 11일
장소: 강남 을지병원(구 안세병원) 사거리 인근 커피숍
진행: 전자인형, 호떡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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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진 형님께서 올라오라고 하신다.”
하나뮤직에서 나오는 음악이란 왠지 아름다워야 할 것 같았어요. 제 음악은 좀 어두웠거든요. 그런데 그 점을 좋게 봐주셨나 봐요.
전자인형(이하 ‘전’): 2집을 8년 만에 내셨는데 이유가 뭔지 궁금해요.
오소영(이하 ‘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많아서 음악을 아예 때려치울까 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음악을 전혀 듣지 못하던 때도 있었어요. 집을 조용하게 해 놓아야만 하던 때가 있었죠. 실어증 비슷하게 걸린 적도 있었구요. 다시 재기했다고 생각해요.
전: 데뷔 앨범이 하나뮤직에서 나왔는데, 하나뮤직이 유야무야되면서 그런 건 아닌가요?
오: 그거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모든 일은 자기 책임 아닐까요?
전: 그래도 영향이 좀 있지 않았을까요?
오: 데뷔 앨범 내고 바로 하나뮤직이 어려워진 건 아니에요. 그때만 해도 잘 뭉쳐 있었어요. 결국 제 자신의 문제였어요. 1집이 잘 안 됐고, 개인적인 일들도 많았고. 하나뮤직에서 2집을 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전: 그럼 하나뮤직은 지금 어떤 상황이에요?
오: 없어진 건 아니에요. 다들 때를 기다리시더라구요.
전: 10년 후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거군요. 아무튼 한동준씨 정도까지를 옛날 분들로 본다면 오소영씨 이후부터는 인디 씬과도 교류가 있었고, 뭔가 새로운 멤버였어요. 하나뮤직의 신인이었죠. 어떻게 하나뮤직에 들어가시게 된 거예요?
오: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를 나갔어요. 하나뮤직 사람들이 대회를 거의 다 진행했었죠. 나가서 입상했는데 그냥 다시 부산으로 내려와서 학교를 다녔어요. 연락은 계속 주고받았죠. 하나뮤직 사람들 부산에서 공연하면 놀러가기도 하고. 낯선사람들의 신진 오빠가 절 많이 챙겨주셨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New Face』라고 신인들 참여하는 컴필레이션을 만드는데 같이 해볼 생각 없냐고. 써 놓은 곡이 있을 테니 데모를 보내달라고 하면서. 그래서 노래와 기타 연주를 테잎에 녹음해서 보냈어요. 진이 오빠한테 다시 연락이 왔죠. “동진 형님께서 올라오라고 하신다.” 그 한마디에 무작정 상경했어요. 아무 연고도 없었어요. 올라가서 얼마 안 있었는데 얘기가 바뀐 거죠. 너는『New Face』하지 말고 솔로를 내는 게 좋겠다고. 그 얘기 듣고 기뻤다기보다 무덤덤했어요. “네. 그렇게 하죠.”
호떡바보(이하 ‘호’): 상경하신 때가 정확히 언제인가요?『New Face』는 99년에 나왔어요.
오: 98년일 거예요. 오래 돼서 기억이 잘 안나요. 제가 아무 것도 몰랐던 때에요. 제가 곡을 제대로 써 본 것도 유재하 경연대회가 처음이었어요. 그 전에는 대충 해본 습작뿐이었어요. 경연대회 나갈 때도 “이번에 떨어지면 다음에 또 나가야지” 이렇게 생각했어요. 물론 동상을 타고는 조금 서운하긴 했죠. 그때 조동익 오빠가 옆에 와서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얘기해줬던 게 기억나요. 뭔가 인연이 되긴 될 모양이었나봐요.
호: 부산으로 다시 내려간 후에 상경하기 전까지 어떻게 지내셨어요?
오: 학교 다녔죠. 겨우 졸업했어요. 수업시간에 강의는 안 듣고 노래 가사 쓰고 그랬어요.
호: 상경한 건 98년인데 앨범은 3년 뒤에 나왔어요.
오: 선배님들 녹음하면 구경하고 기다리고. 그러다가 늦어진 것 같아요. 앨범 녹음 기간이 길었다기보다, 그때 하나뮤직에서 여러 가지 동시에 진행하는 일들이 많았어요. 저는 더군다나 막내였고.
전: 90년대 말이면 하나뮤직이 다시 뭉쳐서 활발하게 돌아가던 때였잖아요?
오: 네. 이규호 앨범도 그 무렵에 나왔고 신인들 데모 테잎도 꽤 많이 들어왔어요. 전 정말 운이 좋았어요. 제가 하나뮤직 팬이었지만 제 음악이 받아들여지리라곤 생각을 안 했거든요. 하나뮤직에서 나오는 음악이란 왠지 아름다워야 할 것 같았어요. 제 음악은 좀 어두웠거든요. 그런데 그 점을 좋게 봐주셨나 봐요.
첫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연습했어요. 포크송이라 코드는 다 비슷비슷했죠. 저한테는 그냥 놀이였는데,
기타와 목소리만큼은 내 걸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전: 1집을 들어보면, 당시에 오랜만에 등장한 포크 싱어라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정작 담긴 건 모던 록 사운드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드럼 세션이 포크 느낌과는 맞지 않게 상당히 록적이었어요.
오: 포크 앨범을 만들고자 했던 건 아니에요. 동익이 오빠는 제가 만든 원곡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서 너무 화려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하셨어요. 앨범 만들기 전에 제 곡을 옆에서 들은 사람들은 오히려 록의 면모가 있다고 얘기 했었어요. 실제로「잊고 싶어」나「부질없어」는 강한 느낌의 곡이었는데 녹음하면서 정제된 거예요.
전: 그렇다면 유재하 경연대회 나가기 전에 음악 활동은 전혀 없었어요? 카페에서 노래를 불렀다거나.
오: 학교 앞 카페에서 통기타 알바를 몇 달 동안 했었어요. 경연대회 데모 테잎도 그 카페 사장님이 녹음해 주셨어요.
전: 그럼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서, 혼자 곡 쓰고 기타를 잡게 됐던 계기가 궁금해지네요.
오: 기타는 엄마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사주셨어요. 그리고 집에 포크송 대백과사전이 있었어요.
전: 어느 집에나 하나씩 있던…….
오: 그걸 보면서 첫 페이지부터 끝 페이지까지 연습했어요. 포크송이라 코드는 다 비슷비슷했죠. 저한테는 그냥 놀이였는데, 그게 토대가 된 것 같아요. 인기가요 악보 사서 연습도 하고. 그때 발라드는 참 좋았어요. 조덕배씨. 그러다가 89년 열렸던 유재하 경연대회 1회 기념음반을 듣게 됐어요. 그 당시 가요들과는 다른 느낌을 확 받았죠. 조규찬 선배님 노래「무지개」너무 좋았고. 정혜선씨도 있었고. 나도 이 대회에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습작을 쓰기 시작한 거예요. 2회도 너무 좋았어요. 고찬용 오빠. 박인영 언니. 유재하 경연대회 때문에 과연 내가 음악을 할 수 있는 사람인가,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싶었어요.
호: 경연대회 음반을 들은 게 고등학교 때였나요?
오: 제가 93학번이니까 아마 그랬을 거예요.
(잠시 학번을 소재로 수다. 전자인형과 호떡은 94학번이다. 그래서 오소영씨와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다 등등~. 남자들은 처음에 록에 입문하고 어쩌구.)
호: 그러니까 오소영씨는 소방차와 포크를 동시에 좋아했었군요.
오: 네. 그때는 그런 걸 구분하지 않고 다 좋아했어요.
전: 그럼 본격적인 음악수업은 하나뮤직에 들어와서 선배님들과 작업하면서 했다고 보면 되나요?
이다오(이하 ‘이’): 진짜로 뭘 배운 건 아니구요, 작업하는 걸 옆에서 1~2년 지켜보다 보면 뭐가 군더더기인지, 뭘 넣고 뭘 빼야하는지를 저절로 알아가게 돼요.
전: 완전 현장 체험학습이네요.
오: 1집 만들 때는 동익 오빠에게 완전히 믿고 맡겼어요. 편곡도 다 하셨고. 저에게 재즈 감성이 없어서 좀 낯선 부분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마음에 들었어요.
이: 약간 오해가 있을 것 같은데요, 녹음 전에 소영이가 곡을 만들어놓으면 몇 마디 빼라, 간주를 빼라, 이런 얘기는 전혀 없었어요. 소영이 곡에 철저히 맞춰서 간 거예요. 소영이의 기타와 목소리에 조금씩 살을 붙여나간 거죠. 동진 형님의 지시도 있었어요. 너무 살 많이 붙이지 말라고.
오: 그런데 작업하는 걸 계속 보면서 기타는 제가 하고 싶은 욕심이 들었어요. 그래서 평소에 별로 말이 없다가 “제가 하고 싶어요.”라고 얘기했어요. “그래, 그럼 네가 해라.” 녹음하면서 고생했죠. 처음이라. 유재하 경연대회 기념음반 만들 때는 함춘호 오빠가 기타를 쳤죠. 아무튼 저는 제 식으로 촌스럽게 치고 싶었어요. 기타와 목소리만큼은 내 걸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다시 시작하고 다시 신인이 된 듯한 느낌이에요.
제 키가 6학년 때 167cm였어요. 전교에서 제일 키가 컸어요. 그런 게 싫었어요. 친구들이랑 어울리기 힘들고.
전: 조동익씨 편곡은 대한민국 최고에요. 기본적으로 멋져요. 하지만 1집에 대한 전반적인 제 느낌은 오소영만의 눅눅한 느낌과는 조금 어긋나지 않았나 싶어요. 1집 편곡에 대해서는 지금도 불만이 별로 없나요?
오: 작업하면서 조금 어필은 했죠.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가져갔어요. 멜로우 캔들(Mellow Candle), 스파이로 자이라(Spirogyra), 이런 것들 들고 가서 참고해달라고 내밀었어요. 그러면 동익 오빠가 “음? 음……” 이러시고.
이: 그게 오케이란 뜻이에요. 그렇게 해주겠다는. 동익이 형은 언제나 다 받아주셨어요.
전: “음?” 이러면 바로 입력이 되고. 거의 신선의 경지군요. 한 번 뵙고 싶어요.
(호떡이 일산 살 때 칼국수 집에서 한 번 우연히 뵌 적이 있다는 얘기를 흘리자, 그 칼국수 집 맛있어요, 하나뮤직 식구들 죄다 일산 살 던 때 있었어요, 등등 수다 줄줄이. 그 칼국수집 정말로 맛있다.)
오: 녹음하면서 조금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더라도 ‘이건 동익 오빠 뜻이겠지’ 이러면서 넘기곤 했어요. 1집을 계속 안 듣고 있다가 2집 만들기 전에 오랜만에 들어봤는데 너무 좋더라구요. 동익 오빠의 의도를 이제야 알아챈 부분이 있어요.
전: 2집은 직접 편곡을 하셨잖아요. 밴드 편성으로 들어간 곡이 4곡 정도 돼요. 드럼이 포크에 맞게 효과적으로 쓰였다고 생각해요. 오소영만의 느낌에 맞게. 1집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오: 평론가들 글 중에서 8년의 공백 동안 오소영에게 음악적 발전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얘기가 있어요. 그런데 그건 아니에요. 다시 시작하고 다시 신인이 된 듯한 느낌이에요. 1집 때는 든든한 선배들에게 의지했었죠. 이번에도 선배님들과 같이 할 수 있었어요. 있었는데 제가 일부러 스스로 하겠다고 한 거예요.
전: 1집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냐면, 후렴이 분명하게 구별되어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니라 음의 흐름이 계속 오르락내리락 해요. 일반적인 포크나 팝의 멜로디 흐름이 아니에요. 어떤 레퍼런스가 있었던 건가요, 아니면 기존 가요와 다르게 만들고 싶은 생각이 강했던 건가요?
오: 전 그냥 저에게서 나오는 걸 했을 뿐이에요. 보통 노래들과 조금 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긴 있었지만. 첫 시작이니까 개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정도였죠. 그러기 위해 곡을 억지로 쓴 건 아니에요.
이: 당시에 그런 생각을 서로 하고 있었죠. 어린 신인만의 패기랄까, 그런 것도 있었고. 하나뮤직 식구들이 그냥 가수가 아니라 뮤지션 집단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까요. 소영이가 소영이만의 뭔가를 갖고 있었어요.
오: 그러니까 상경하라고 하셨겠죠. “요 놈 봐라~”
전: 자기도 모르게 어떤 독특한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있어요. 오소영씨 노래는 참 따라 부르기가 힘들어요.
호:「기억상실」이 그런 노래라고 생각해요.
오: 원래 타이틀곡을「기억상실」이 아니라 조금 평범한「왜일까」로 하려고 했어요. 제가 발라드도 쓰긴 하지만 그 당시엔 뭐랄까, 비관적이었어요. 세기말이었고. 요즘은 그런 거 많이 없어졌어요.「왜일까」는 대학생 때의 풋풋함이 들어가 있어요.
호: 1집은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소외됐어’ 이런 얘기들이 대부분이에요.
오: 1집 때 인터뷰를 하면 항상 “전부 오소영씨 얘기에요?”라고 물어봤어요. 제 얘기가 맞는데, 그렇게 인정하면 괜히 그런척한다고 할까봐 다른 사람들 얘기라고 둘러댔어요. 저는 제가 느꼈던 게 아니면 곡 쓰기가 힘들어요. 직접 겪고 느꼈거나 아니면 꿈을 꿨던 얘기를 써요. 1집, 2집 마찬가지에요.
호: 그런데 1집 때는 왜 유독 그런 감정들에 젖어있었던 걸까요?
오: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 집에서 책만 보고. 제가 6살 때 엄마한테 “8살 되면 죽을 거야” 이랬대요. 학교에 다니기 싫어서. 제 키가 6학년 때 167cm였어요. 전교에서 제일 키가 컸어요. 그런 게 싫었어요. 친구들이랑 어울리기 힘들고.
이: 제가 하나뮤직에 제일 늦게 들어갔어요. 처음 소영이를 동진 형님 콘서트에서 처음 봤어요. 그때 게스트로 나와서「부질없어」를 불렀는데, 그 순간 제가 얼어버렸어요. 뭔가 통했나봐요. 처음엔 말 걸기 힘들었어요. 머리 초록색으로 물들어있고. 굉장히 신비에 쌓여있었어요. 알고 보니까 소영이가 ‘내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을까?’ 이래서 말을 잘 안 했던 거예요.
그냥 8년을 뭉뚱그려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오: 사실 2집 만들고도 아예 인터뷰를 하지 말까, 생각도 했었어요. 자기 음악에 대해서 설명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냥 듣는 사람이 원하는 방식대로 들어야지, 이런 생각도 하고. 그래서 더 오해할까봐 얘기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전: 그런 오해 중에 하나가 8년 동안 계속 음악 해온 줄 안다, 이거군요.
오: 좀 전에 얘기했지만 저는 다시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편곡도 처음 해봤고. 심지어 홍대 인디 씬에서 활동하는 후배들이 선배 같아 보였어요. 전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어떤 틀에 갇히기도 싫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어요. 제 나이 때까지 활동한 다른 가수들을 보면 자리를 잡고 자기 스타일대로 쭉 가고 있어요. 저는 조금 달라요. 1집과 똑같은 음악을 할 수는 없는 것이고. 저를 좀 루즈하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몇몇 분들의 평을 보면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얘기들을 느끼신 것도 같아요. 그런 점은 참 신기해요. 내가 남에게 가 닿는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많이 밝아졌다고들 하는데 깊숙이 들어가면 사실 그렇지 않아요.
이: 소영이 음악이 양면성을 갖고 있어요. 1집과 2집의 긴 시간을 떠나서. 감정적인 측면에서도 그래요. 일부러 밝은 노래를 넣은 게 아니에요. 앞에서 얘기했듯이 원래 시완 레코드의 아트록이나 프로그레시브를 좋아했기 때문에 그런 게 나온 거예요. 이번에「Happy People」과「난 늘 왜 이리도」는 제가 넣자고 주장했어요. 원래 뺄까 말까 고민했었거든요. 2집이 컨셉추얼한 측면이 있는데 그거랑 맞지 않는 노래들이거든요.
오: 8년 만의 앨범이니까 그동안 썼던 곡들을 무두 모아서 보여드리자, 이렇게 결론이 난 거예요. 저는 심각한 노래를 만들 때 몸도 마음도 힘들어요. 그냥 편안하게 부를 만한 곡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나온 곡이니까 넣자고 했죠. 일단은 녹음하는 과정이 굉장히 즐거웠으니까. 세션들이 제1집 활동할 때 같이 했던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호흡이 아주 잘 맞았어요. 살을 붙이면서 조금씩 바뀌기도 하고. 중심은 소영이가 잡았고요.
오:「난 늘 왜 이리도」는 제 평소 생활이에요. 투덜거리면서 신세한탄하고, 로또 복권 사고. 지금도 꾸준히 사고 있거든요. 가사가 밝지는 않아요. 어차피 해결되는 건 없어요.「Happy People」은 제목과 다르게 제일 불행할 때 만들었어요. 그냥 8년을 뭉뚱그려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헐렁하게도 해보고 싶고 빡빡하게도 해보고 싶어요.
전: 1집의 비관적인 정서는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실 익숙한 정서에요. 흔히 표현하는 루저의 정서. 90년대를 지배했던 정서이기도 하구요. 저는 1집이 그런 정서에 빠져있었다고 한다면, 2집에서는 그때를 인정하면서 조금은 편안해진 것 같아요.「Happy People」의 역설적인 면도 그렇게 해서 나온 것 같고. 예전엔 몰두했었지만 지금은 편안하게 내놓는 달까. 더 깊어졌어요.「끝없는 날들」이나「그만 그 말 그만」같은 곡들. 은유적인 표현도 강하고. 예전엔 우물에 빠져서 쏘아붙였다면 지금은 그걸 갈무리하는 느낌?
이: 1집 가사는 직설적이고 2집 가사는 은유적이다, 제가 봤을 때는 그 갭이 없어요.
오: 저는 사실 지금도 우울해요. 30대가 되면 둥글둥글해진다고 하는데 저는 아니에요. 지금도 상처 잘 받고. 표현만 예전처럼 하지 않을 뿐인 것 같아요. 가사는 여러 가지를 써 봐요. 1집에선 그런 가사들만 모았던 거고. 2집은 다른 거고. 다음엔 또 다를 수 있고.
이:「난 늘 왜 이리도」는 1집과 비슷한 것 같아요. 제가 1집에서 가졌던 불만이 뭐였냐면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는 게 약간 찌질이 같았어요. 2집은 더 좋아요. 표현할 말을 잘 못 찾겠네요. 8년이란 시간이 작용한 건 분명하구요.
오: 1집이 막연한 우울이라면, 2집은 뭔가 겪고 난 후의 우울?
전: 저는 이 사진을 보고 양희은 2집이 확 겹쳐졌어요. 양희은이나 조동진이나 피안을 노래하는 경우가 많아요. 영국의 바시티 버니언(Vashti Bunyan)도 마찬가지고. 이번 2집에서 저는 그런 면을 느꼈어요. 특히「숲」이란 노래에서.
이:「숲」은 좀 일찍 나온 노래에요. 프로젝트『Dream』에서는 소영이가 기타 한 대로 거의 다 했어요. 제가 이번에 다시 넣자고 했어요. 살을 다시 입힌 거죠. 제가 몽롱한 걸 좋아하니까 약간 그런 쪽으로.
전: 이다오씨가 해석한 오소영의 분위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네. 그렇다고 할 수 있죠.「숲」은 3년 전에 재녹음을 했어요. 그런데 2집에 넣어 봐도 흐름상 잘 어울리더라구요.
(여차저자 하다가 이다오씨가 부산 클럽 인터플레이 공연 얘기를 꺼냄. 친구 결혼식 때문에 내려갔는데, 이왕 간 김에 공연 한 번 했다고 함. 관객이 13명이었는데 분위기 참 좋았다고. 사장님도 아주 좋아하셨다고. 그 다음 이다오씨가 하나뮤직에 들어가게 된 과정 얘기로 흐르는데, 안타깝게도 옆 테이블 수다 소리랑 섞여 녹취가 거의 불가능-_-;)
어디서 앨범이 나온다는 보장도 없이 무조건 작업을 들어간 거예요.
전: 앞에서 나왔던 얘기지만 다시 한 번 묻고 싶어요. 자기 음악이 포크라고 생각하세요?
오: 포크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아니라고 할 수는 없죠. 어릴 때부터 기타 치면서 나도 모르게 포크를 해왔던 것 같아요. 동진 형님의「작은 배」가 언제 적 노래죠? 라디오에서 그 노래를 듣고 되게 좋았던 기억이 나요. 그런 게 인연이었던 것 같아요. 기타를 사주신 것도 그렇고. 근데 정작 음악을 업으로 삼겠다고 하니까 엄마가 싫어하셨어요. 기타 대신 옆에 있던 쓰레기통을 부수셨어요.
전/호: 으허허!
오: 2집 나오기 전까지 빨리 안정된 직장 구하라고 하셨어요. 학습지 교사는 어떠냐 이러시면서. 막상 앨범 나오니까 좋아하시더라구요. 라디오 나간다고 하면 좋아하시고. TV에 많이 나가야 더 좋아하실 텐데.
호: 2집 내면서 다시 시작하는 것 같다고 하셨는데,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그래도 8년 동안 뭔가 꾸준히 해왔다는 느낌도 있어요. 하나뮤직 컴필레이션에 참여하셨고, 롤리팝 레이블에서 나온 컴필레이션에도 참여하셨고, 블루315 EP에도 목소리가 들어가 있고. 계속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내면서 점을 찍으셨어요.
오: 참여 부탁이 오면 음악을 들어보는데, 딱히 싫은 곡들이 없었어요. 듣기에 별로였다면 안 한다고 했겠죠. 신세철 오빠와 류호성 오빠가 다 제 목소리에 맞는 곡을 쓰셨어요.
호: 아무튼 다시 제대로 활동하고 음반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하신 건 2~3년 전이군요.
오: 2집 곡들에는 제가 생각했던 어떤 상황들이 들어가 있어요. 예를 들어「아무도 모르게」는 누군가를 격려하는 노래에요. 제가 힘들 때 주위에 아무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누가 나한테 이런 격려 좀 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격려죠.
이: 옆에서 지켜보면서 음악 하라고 강요할 수 없었어요. 소영이 스스로 준비가 되어야만 하니까.
(이디오씨의 낮은 목소리는 옆 테이블 아저씨들 쩌렁쩌렁 목소리랑 섞여 도무지 들리질 않는다. OTL)
오: 2집 작업하면서 처음 하는 일들이 많았어요. 편곡도 처음 해봤고. 앨범에 회사 이름이 들어가 있는데, 처음부터 그렇게 진행된 건 아니에요. 이다오씨랑 저랑 거의 작업을 다 해놓은 상태에서 계약을 하게 됐어요. 녹음하던 사운드솔루션(www.s-solution.co.kr) 녹음실이 시니즈 엔터테인먼트라는 회사와 연결되어 있었어요. 그곳에서 도움을 주신 거죠.
전: 그럼 8년보다 더 길어질 수도 있었겠네요?
오: 그렇죠.
이: 사운드솔루션 운영하시는 분이 들국화 허성욱씨 동생 분이에요. 그분도 하나뮤직 통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소영이 음악을 되게 좋아하셨어요.
오: 그러니까 우리는 어디서 앨범이 나온다는 보장도 없이 무조건 작업을 들어간 거예요. 편곡 하고 녹음 하고.
이: 믹싱 작업까지 한 걸 제가 인디 레이블 포함해서 여러 군데 제작사에 들려주긴 했어요. 그 중에서 전속으로 하자는 곳이 있었어요. 그런데 소영이가 조금 부정적이더라구요. 저도 나중에 뭔가 안 좋은 효과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솔루션 사장님이 “그럼 내가 내줄게.” 이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옛날부터 동진, 동익 두 분이 하는 걸 보아오면서 하나뮤직에 어떤 마음의 빚이 있었다고. 너희들이 다시 시작한다니까 보기 좋다고. 어떤 이득을 바라보고 앨범 내주기로 하신 게 아니에요.
전: 판매는 향뮤직(www.hyangmusic.com) 독점이에요.
이: 제가 향 사장님과 친분이 있어서요. 독점으로 해드릴 테니까 홍보 좀 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사장님이 좋으신 분이라서 선뜻.
연주 연습을 좋아해요. 연주할 때의 그 기분. 마음의 평온 같은 걸 느껴요.
전: 앨범을 만드는 과정에서 하나뮤직 분들도 빠져 있고, 인디도 빠져 있고. 조금 독특한 형태로 나왔네요. 아, 1번 트랙부터 플루트가 들어가 있어요. 이 소리가 참 좋은데, 또 플루트에 대한 괜한 선입견이 있어요. 부잣집 딸내미들이 배우는 거? 혹시 음대 입시를 위해 플루트를 배우신 건 아니죠?
이: 저 때문이에요. 제가 선물 받은 플루트 하나를 갖고 있었어요. 완전 장식품이었죠. 그 녹슨 걸 소영이가 달라고 했어요.
오: 공백 기간에 취미로 배운 거예요. 다오에게 받은 플루트가 거의 망가진 거여서 나중에 다른 친구에게 또 빌렸죠. 처음엔 그냥 재미로 시작했어요. 제가 취미로 악기 독학하는 걸 즐기는 편이에요. 연주 연습을 좋아해요. 연주할 때의 그 기분. 마음의 평온 같은 걸 느껴요.
이: 짧은 기간에 금방 잘 불더라구요. 제가 바이올린도 하나 갖고 있는데 그거 또 뭐냐고 물어보고.
오: 제 어릴 적 꿈이 원래 바이올리니스트였어요. 저희 집 형편이 그리 좋질 못했어요. 엄마가 제 꿈 얘기를 들으시더니 대신 하모니카를 사주셨어요.
전/호: 하하하!
오: 그게 계속 마음에 걸리셨는지 나중에 기타를 사주신 거 같아요.
호: 2집에 플루트를 많이 넣어야겠다는 생각은 오소영씨가……
오: 네. 자연스럽게 하게 됐어요. 편곡을 처음 하다 보니까 제가 다룰 줄 아는 악기를 넣어야 쉬워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모든 악기를 다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완전히 프로처럼 하지는 못하더라도. 누구한테 배우는 게 약해서 독학으로 하는데, 좀 느리죠. 대신 끈기가 있죠. 교본을 보며 내가 이기나 네가 이기나 두고 보자.
전: 1집에 오보에 쓰인 곡이 있잖아요?
오:「바람」이란 곡인데, 박용준 오빠가 편곡했어요. 오보에 연주하신 분이 이소림씨인데, 하나뮤직 엔지니어로 부임한 첫 날에 연주한 거예요. 오보에 전공하신 분이거든요. 엔지니어로 와서는 오자마자 연주를 했죠. 그 친구 때문에 만들어진 노래가「Soulmate」에요. 그 친구가 결혼하게 돼서. 그 노래가 절절할 수밖에 없어요. 좋아하는 친구를 위해 만든 곡이라.
이: 원래는 그 곡도 앨범에 넣을 생각이 없었어요. 제가 넣자고 해서 넣었죠.
오: 저는 그냥 축가로만 계속 부르려고 했어요. 저는 정말 축가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결혼식 가서「부질없어」를 부를 수는 없잖아요.
전/호: 하하하하!
오: 소림이 신랑이「덜 박힌 못」을 불러달라고 하는 거예요. 어떻게 결혼식에서 그걸 불러요. 하나 만들어볼 테니까 기다려달라고 했죠. 원래 후렴 부분은 만들어져 있었어요. 앞부분이 마음에 안 들어서 내버려둔 곡이었죠. 가사도 달랐고 좀 이상했어요. 무슨 복음성가 같았어요. 저는 무교거든요. 그런데 친구 부탁 덕에 쉽게 풀렸어요. 가사가 많이 직설적이에요. 진짜 축가 같아요. 홈페이지(www.osoyoung.com)에 악보도 올려놨어요. 팬들이 결혼식에서 부르고 싶다는 요청이 여러 번 있어서.
전: 대중적으로 성공한 곡이네요.
편곡할 때부터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전: 드럼 박필진씨는 예전에 와이낫(Y Not?)에서 활동하셨던 분이에요. 드럼 작살나게 치시는 분인데. 오소영씨 앨범에서는 드럼이 효과로만 사용됐어요.
오: 제가 원했던 방식으로 다 해주신 거예요. 제 음악을 잘 이해하고 거기에 맞춰서 해주셨어요. 굉장히 역량 있는 드러머에요. 곡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요.
이: 합주할 때 그 분이 밴드 마스터 역할을 해요. 세션이 제 공연 때 같이 했던 분들이라 호흡이 잘 맞아요.
전: 베이스 박영신씨는 예전에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오: 세션 계속 했고, 밴드도 했다고 들었어요. 뮤지컬 <헤드윅> 했었고.
전: 기타의 조정치씨도 참 연주 잘 하시는 분인데…… 마지막 곡「아름다운 너」의 후주가 조금 논란이 되고 있어요.
호: 저는 개인적으로 별로였어요. 노래와 떨어져서 분리된 느낌이랄까.
전: 저도 그런 편인데, 다시 생각해보면 앨범의 마무리를 쫘악 지으려는 것 같기도 하고.
오: 편곡할 때부터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난데없다고 느끼실 수도 있고, 다른 곡들이랑 비교도 되죠. 저는 조정치씨 플레이가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기타 솔로를 생각해두고 데모 만들 때 뒷부분을 아예 비워뒀죠.
이: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처럼 가보자고 생각해서 정치를 부스에 집어넣고 나오지 말라고 했어요. “이번 건 쓰레기야. 다시 해!” 계속 돌렸죠. 향 사장님은 그 부분이 너무 좋다고 하세요. 빵 터지니까.
오: 그 부분을 완전히 구체적으로 짜 놓았던 건 아니에요. 뭔가 좋게 들어간다면 좋은 거였고. 그게 안 좋게 들린다면 어쩔 수 없는 거죠. 취향이 다 다르니까요.
전: 오소영씨는 어떤 스타일이세요? 녹음 전에 다 짜 놓나요, 아니면 녹음 하면서 이래저래 바뀌나요?
이: 전자에요.
오: 모든 곡이 그렇진 않아요. 헐렁하게 해놓고 세션들에게 맡기는 경우도 있고.「돌이킬 수 없는」과「아름다운 너」는 데모랑 거의 똑같이 녹음했어요. 편한 방식을 계속 찾는 것 같아요.
호: 올해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두드러졌어요. 오지은, 흐른, 이런 분들. 제가 리뷰에서 ‘레벨이 다르다’고 표현했는데, 분명 다르신 것 같아요.
오: 나이 문제도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분들 나이가 제가 1집 활동할 때의 나이쯤 아닌가요? 제 1집 때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호: 인디 쪽 음악은 들으시나요?
오: 요즘에 좀 많이 들었죠. 말씀하신 여성분들 참 잘 하시더라구요. 제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거의 없었어요. 기타 치며 노래하는 여자는 필순 언니 정도? 지금 그분들 보면서 자극도 받고, 팬이기도 하구요.
「돌이킬 수 없는」이 <덱스터>라는 호러 드라마 보다가 만든 거예요.
나중에 진짜로 행복한 순간이 오면 행복한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전: 앞에서 우울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왔었는데, 그러면 어디서 위안을 얻으세요? 일단 노래도 그 중 하나가 될 것이고. 뭐 고양이가 될 수도 있구요.
오: 고양이랑 있으면 마음 편하죠. 제일 편할 때는 악기 연주할 때. 어쿠스틱 기타 연습곡 칠 때. 반복해서 안 틀릴 때까지 연습하는 거. 플루트, 바이올린 연습할 때. 영화도 많이 봐요. 미드도 좋아하고. 미드 보다가 모티브를 얻어서 곡을 쓰기도 해요.「돌이킬 수 없는」이 <덱스터>라는 호러 드라마 보다가 만든 거예요. 제가 호러 마니아라서요. 살인마가 나와요. 인간의 어두운 부분을 다뤄서. 원래는 죽음에 관한 노래를 쓰려고 했었는데, 사람들이 듣기에 조금이나마 편한 게 좋겠다는 생각도 있고 해서 바뀌었죠.「그만 그 말 그만」도 원래 상당히 어두운 노래였어요.
이:「그만 그 말 그만」초기 버전이, 후렴은 그대로였고 앞부분이 상당히 가라앉아 있었어요. 절망적이었죠. 제가 좀 편하게 다시 가보자고 해서 바꾼 거예요.
오: 1집 때는 대중적으로 가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어요. 강박관념 같은 거. 지금은 편한 멜로디가 나와도 그대로 수용하는 편이에요. 음악으로 돈을 벌고 생활을 할 수 있으면 좋지만, 가장 우선은 제가 재미있어야 하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든 싫다고 하든 만드는 사람이 재미있어야죠. 2집은 유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제가 다 만들고, 녹음도 하고, 믹싱이랑 마스터링 할 때도 옆에 붙어 있었고. 디자인도 제가 하고. 힘들긴 힘들었죠. 원형 탈모도 생겼었어요. 땜통이 생겼었죠. 지금은 나았어요. 녹음 하고 쉬어야 하는데 또 사진도 찍으러 가야 했고.
이: 앞에 말씀하신 나무에 앉아 찍은 사진, 그거 포천 산정호수에 있는 거예요.
오: 안개를 찍으려고 잠도 못 자고 새벽에 갔는데 안개가 없었어요. 어둡게 나온 사진을 밝게 하면서 효과를 냈어요. 필터도 썼고. 표지 사진은 포샵을 좀 했죠. 굉장히 땡볕이었어요. 역시 산정호수에서 찍었어요. 꽃도 직접 따다가 뿌렸어요. 그때 이다오씨, 해오씨, 해오씨가 소개해준 재렴씨가 같이 갔는데, 세 분이서 꽃 따러 다니고. 더워서 굉장히 고생했어요.
이: 원래 상의를 입고 있었는데 그걸 포샵으로 지웠죠. 좀 벗겨보자고 해서. 민소매 원피스였는데 어깨끈을 지웠어요.
전: 잘 지우셨네요. 그럼 이 나무는……
오: 호숫가에 드리운 나무에요.
이: 자세를 보세요. 호수에 빠질까봐 자세가 좀 불안해요.
전: 재미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꺾는 창법도 그렇게 느껴지네요.
오: 그게 두각을 드러낼 정도는 아니죠. 그냥 효과적인 장치에요. 제 느낌을 전달할 수 방향으로. 꺾으면 뭐랄까, 노래 부르다가 한숨을 넣는 것 같아요. 그런 걸 좋아해요.
전:「난 늘 왜 이리도」는 제목부터가 참 독특한 그루브에요.
이: 소영이만이 가지고 있는 그런 거죠.
오: 1집의「실수」도 비슷하네요. “그렇게 하루가 또 가고 나는 또~” 일부러 만든 게 아니라 그냥 나오는 대로 만든 거라.
전: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이런 느낌이군요.
호:「숲」이란 노래도 그렇고 뭐랄까, 자연주의적인 냄새가 있어요. 그게 오소영씨가 무슨 히피라 그런 게 아니라 어떤 상징적인 거라고 봐요. 남들이랑 똑같이 일상을 살고 있는데 그런 것들이 풍겨 나온다는 게 독특해요.
오: 뭐 자연을 좋아하긴 하죠. 하늘 보는 것도 좋아하고. 물을 보거나 하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곤 해요. 사람들 사이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
전: 인간의 어두운 면에 남다른 애정이 있으세요?
오: 애증이죠. 어둡다고 걱정할 만 한 건 없어요. 홍대 클럽에서「기억상실」을 부르면 관객들이 그냥 듣는데, 무슨 행사 같은데 가서 부르면 웃어요. “내가 누구냐고? 나도 몰라” 이러면 웃는 거예요. 굉장히 많이 웃은 적도 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들이 참 행복한 것 같아요. 그분들에겐 그런 부분이 없는 거죠. 그분들이 부럽기도 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어두운 아이였으니까요. 이한철 오빠 보면 부러워요. 이번에 앨범 들려줬더니 “4번 트랙이 좋더라~”「난 늘 왜 이리도」가 제일 좋았대요. 그 노래가 밝잖아요. 사람마다 다가갈 수 있는 것들이 다른 거예요. 규호는「끝없는 날들」이 좋다고 했고. 저는 욕심에 사람들이 골고루 좋아할 수 있게 여러 가지 곡들을 쓰고 싶어요. 마니아분들도 소중하지만. 그렇다고 제 걸 잃는 건 아니니까. 나중에 진짜로 행복한 순간이 오면 행복한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아직은 그게 안 되니까. 안 된다고 단정 짓는 건 아니구요. 체념하면 발전이 없으니까. 일단은 재미있게 해야죠. 스스로를 단련시켜서, 단단하게 만들어서 나쁜 일에 덜 흔들리고 기쁜 일은 크게 품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술도 못 마시고 내성적인 영혼이라.
전: 2집이 퐁당퐁당 구성이잖아요. 2곡 가라앉고, 다음 2곡은 좀 위로 뜨고, 또 2곡 가라앉고. 앨범 구성할 때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이:「난 늘 왜 이리도」는 한철이 형도 할 수 있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나온 거니까 넣기로 했어요. 전체 흐름상 좀 안 맞는다고 해도. 지금 하나뮤직이 하향세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 꼬리표는 뗄 수 없잖아요. 저 같은 경우 인디 쪽을 왔다갔다했는데, 하나뮤직에 있다는 것만으로 음악 잘하나보다 이런 시선도 받고 그랬거든요.
오: 그런 게 부담돼서 일부러 선배님들과 작업 안 한 측면도 좀 있어요. 하나뮤직 선배님들에게 누가 될까 걱정도 했어요.
이: 선곡하고 편곡하면서 그런 걱정들이 있었어요. 결국 그냥 우리 식대로 가기로 했죠.
오: 쫙 몰아넣을까 생각도 했었어요. 앞부분에 어두운 노래들, 뒷부분에 밝은 노래들.
이:「그만 그 말 그만」이 타이틀곡인데 맨 앞에 넣을까 생각도 했어요. 곡이 좋으니까. 곡이 별로면 스킵 몇 번 하다가 5~6번 트랙 정도 가면 더 이상 안 듣잖아요, 사람들이. 나중엔 그냥 흐름대로 가자고 했어요.
오: 사람이 흐릴 때도 있고, 밝을 때도 있고, 가끔 멍 때릴 때도 있고.「난 늘 왜 이리도」가 멍 때리는 노래죠. 그런 흐름대로. 2집이 컨셉 앨범은 아니니까. 지금까지 써왔던 것 총망라 앨범이니까요. 나중엔 물론 컨셉 앨범 해보고 싶어요.
전: 앨범에 싣지 못한 곡이 있나요?
오: 많죠. 작업까지 해놓고 안 실은 곡도 있어요. 15곡 넣을까 생각도 했었구요.
전: 안 실린 노래들 중에서 2집에 있는 노래들과 전혀 다른 성격의 것도 있나요?
이: 1집 때 풍의 노래가 있었어요. 기타 한 대로 녹음하고. 멜로디도 굴곡지고.
오: 그건 1집 때 쓴 거예요. 가사도 그렇고.
전: 손지연씨 아세요?
오: 찬용 오빠랑 친해서 하나뮤직 공연 하면 놀러오고 그랬어요. 노래도 좋고. 가사도 좋죠. 굉장히 팬이에요.
호: 오소영씨랑 가장 비슷한 뮤지션이란 생각이 드네요.
오: 그 분 술 좋아하고 자유로운 영혼인데, 저는 술도 못 마시고 내성적인 영혼이라. 저랑은 다른 감성이죠.
전: 음악을 만드는 스타일이랄까, 손지연씨도 나오는 대로 노래 만드는 스타일 같거든요. 그런 점이 비슷해 보여요.
호: 2집 활동은 어떻게 하고 계세요?
오: 아직까지 크게 바쁘지는 않았어요. 앞에서 얘기했지만 부산 인터플레이에서 공연 하고 왔고, 이번 주말에 샤(sha)에서 공연하고. EBS 스페이스 공감 나가고,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나가고. 3호선 버터플라이 EP 발매 공연 게스트로 서고. 앞으로 공연 많이 하고 앨범도 좀 빨리 내고 싶어요. 8년 만에 나와서 거창하게 수련하고 나왔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는데요, 전 아직 제 음악을 시험하는 중이에요.
전: 이다오씨는 다음 앨범 언제 나오나요?
이: 우선 8년은 안 걸려야겠죠? 원래는 제 녹음을 먼저 들어갔어요. 그런데 중간에 소영이 걸 먼저 내야겠다고 생각했고. 소영이 거 내면서 내가 비즈니스를 얼마나 잘하나 시험해보고 싶기도 했구요.
오: 그런 쪽에 재능이 있어서 잘 해요.
이: 제가 여기저기 쌓았던 친분이 많더라구요. “○○형, 앨범 나왔는데 행사 잡으면 연락 줘요.” 이러고 딱 끊으면 얼마 후에 연락오고. 품앗이라고 할까요? 유희열 선배도 많이 도와주고.
오: 너무 고마운 게, 하나뮤직 선배님들이 앨범 듣고 다들 너무 좋다고 해주셨어요. 그게 빈말이 아니라 네가 앨범을 내주니까 너무 감동적이다, 라고 말씀해주시고. 맥을 이은 거니까요. 찬용이 오빠는 굉장히 까다로운 사람인데, “1집 땐 인정 안 했는데 이번에는 인정한다.” 이러셨어요. 저는 평론가들 평이 좋아도 불안해요. 내 음악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모르겠고. 찬용 오빠가 좋아해주니까 기분이 좋았어요.
이: 최근에 한동준 형 공연 끝나고 하나뮤직 식구들이 거의 다 모였어요.
오: 거의 10년 만이었나? 너무 너무 좋았어요. 동준 오빠 첫 날 공연 참 좋았어요. 목소리도 좋았고. 용준 오빠가 편곡하고.
완전히 놓고 계시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 마음 속엔 그런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잘 드러내질 못하니까, 그렇게 드러내놓고 하는 음악이 좋은가 봐요.
전: 한동준씨 인터뷰 할 때 그런 얘기를 하셨어요. 하나뮤직이 어떤 의미에서 조금 폐쇄적인 면이 있다고. 그 의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오: 저는 처음 들어갔을 때 저랑 너무 비슷하다고 느꼈어요. 하나뮤직 분위기가. 서로 말을 많이 하거나 그러지 않았어도.
이: 폐쇄적이라기보다 내성적이죠. 하나뮤직에 누가 찾아오든 다 받아줬어요. 그 표현이 “아… 네……” 이랬던 것뿐이에요. 동익이 형이 옛날에 온갖 편곡과 세션을 다 하셨잖아요. 그러다가 이제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해야겠다, 이랬던 것이지 남들하고 어울리지 않겠다는 건 아니었어요.
오: 엔젠가는 동익 오빠 정규 앨범이 나올 거예요. 하고 싶을 때 하는 타입이시니까. 저도 그랬던 거고. 그냥 완전히 놓고 계시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나뮤직이 끝났다고 생각 안 해요.
이: 하나뮤직 선배님들이랑 같이 있었을 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오: 사람들을 만날 때 편견 없이 만나요. 진짜 모습을 받아줘요. 하나뮤직 말고 다른 곳으로 갔다면 제 1집도 나오지 못했을 것 같아요. 계속 잘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부모님에 대한 마음 같아요.
호: 향뮤직 사이트 보니까 판매 순위가 계속 상위권이에요?
이: 초판은 다 나갔어요. 재판 들어가요. 비트볼이나 롤리팝에서 전화 왔어요. “너 여기 부장으로 들어와라.”
전/호: 하하!
이: 제가 한 일이 많은 건 아니에요. 제가 할 일은 공연 잡는 거죠. 인디 쪽이랑 계속 연락을 취해 왔으니까 “○○형, 하나음악에 빚진 거 없어?” 이러면서 무슨 일 부탁하고.
전: 고정 팬은 많은가요?
오: 1집 때부터 좋아해주시던 분들이 있죠. 팬 카페가 있어요. 몇 분 계신데 하나뮤직 음악은 다 좋아하죠. 이제는 친구 같아요. 나이 드신 분들도 좀 있어요.
전: 양희은, 윤연선, 현경과 영애, 뭐 이런 뮤지션들 좋아했던 게 오소영씨로 이어진다는 생각도 드네요. 요즘은 어떤 음악 들으세요?
오: 여자 가수들 음악 많이 들어요. 레지나 스펙터(Regina Spektor)나 똘기 있는 음악.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 릴리 알렌(Lily Allen). 제 마음 속엔 그런 부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잘 드러내질 못하니까, 그렇게 드러내놓고 하는 음악이 좋은가 봐요. 한국 음악 중에서는 양방언씨 음악 좋았어요. 검정치마 좋고,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좋아해요.
호: 조까를로스…… 이름이 참.
오: 그분 노래 굉장히 잘 하시잖아요.
전: 녹음이 너무 깨끗하게 잘 돼서 일부러 잡음 넣었다고 하던데요. 일부러 싼티 나게.
오: 그분들 보면 음악을 진짜 즐기시는 것 같아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 본인이 즐겁지 않으면 표가 나요.
호: 책도 많이 읽으신다고……
오: 소설 위주로 읽어요. 최근엔 하루키 새 소설 <1Q 84> 읽고 있어요. 막상 얘기하려니까 기억이 안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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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는 일단 여기까지입니다. 파일이 150분을 지나고 있네요. 이 다음부터는 이 얘기 저 얘기 그냥 되는 대로 편하게 떠들었습니다. 두서 없이 말이죠. 여기 올린 것도 두서 없긴 마찬가지지만요. 뒤의 더욱 두서 없는 90분 정도의 대화는 제가 마저 듣고 외전 비스무레하게 올리든지 말든지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이다오씨에게 죄송하네요. 목소리가 안 들려 패스 한 곳이 많습니다(아무래도 다음부터는 꼭꼭꼭 ‘민들레 영토’ 같은 변태스러운 곳을 섭외해야 할까 봐요).
정말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오소영씨의 음악이 훤칠한 키처럼,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밑도 끝도 없는 이상한 생각을 해봅니다.
[출처] [월간대담 24] 오소영 – 기타와 노래와 나 (음악취향 Y) |작성자 호떡바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