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함께 한다.

건조하지만 따뜻한, 독특한 목소리로 우리 가요계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로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장필순.

감각적인 보사노바에서 진솔한 포크, 세련된 모던락에서 몽환적인 일렉트로니카까지,

넓은 영역을 아우르면서도 결코 자신만의 목소리를 잃지 않았던 그녀가

2002년 발표했던 6집 이후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

다양한 장르, 폭넓은 세대를 아우르며 명실공히 국내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자리를 잡은 함춘호.

전설이 된 프로젝트 앨범, ‘야샤’에서 놀랍도록 맑은 자신만의 세계를 보여준 바 있고,

우리 가요사의 명반으로 꼽히는 ‘시인과 촌장’에서 하덕규와 함께

완성도 높은 음악 언어를 조율했던 그가  프로듀서가 되어 한 장의 앨범을 만든다.

장필순과  함춘호는 멀지 않은 거리에서 동시대 서로의 정서를 공유하며 음악 여정을 걸어 왔다.

그 오랜 인연 끝에 처음 그들의 이름을 걸고 함께 프로젝트 음반을 낸다.

여기에 또 다시 ‘오래된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앨범 전체의 편곡과 건반 연주를 도맡은,

세련된 감각의 듀오 ‘더 클래식’의 멤버였던 박용준,

90년대 초반 참신했던 등장이 인상적이었던 그룹 ‘새바람이 오는 그늘’출신이자

재즈 밴드 The Bird의 리더, 그리고 그들의 오랜 음악 동지, 베이시스트 김정렬,

서울전자음악단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이자 걸출한 드러머 신석철이 그들이다.

대부분의 곡을 장필순이 직접 썼고,

함춘호 역시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아름다운 연주와 함께

두 곡(‘이곳엔 아무것도’, ‘당신 생각하면’)을 작곡했다.

장필순의 목소리로 발표된 바 있었던 이무하의 곡(‘길’, ‘아이들에게’)도

박용준의 편곡으로 리메이크 되어 실렸다.

함춘호의 영롱한 멜로디에 장필순이 가사를 쓴

‘이곳엔 아무것도’는 젊은 날에는 얻을 수 없는 깊이 있는 회한이 섬세하게 그려졌으며,

장필순의 곡 ‘푸른밤을 여행하다’는 그녀가 도시를 떠난 삶을 택한 이후 얻게 된

아름다운 시선이 탁월하게 담겨있다.

신비롭고 차분한 트랙들과 함께 이전에 그녀가 이미 보여준 바 있었던

도시적인 감성이 담긴 ‘당신 생각하면’과 같은 트랙들도 만날 수 있다.

특히 피아노와 오보에의 단출한 구성이었던, 전원적인 느낌의 ‘길’(장필순 4집 수록)이

이 음반에서는 지극히 건조하고 도시적인 회한을 담아 인상적으로 리메이크되었다.

그들의 프로젝트 음반은 CCM이라는 소수의 장르를 선택하였으나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보편적인 언어를 통해 진솔한 신앙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솜씨 좋은 음악의 장인으로서 일상을 살아가는 그들만의 시선을 담는다.

고단한 인생 여정 가운데 문득 멈추어 서서 ‘내 지나온 날 생각하며,

돌아보면 아름다웠던 희미한 그 기억들’(“길”)을 되새기기도 하고

이 길이 닿는 곳을 가늠해보기도 한다.

그 휴식의 순간에 만나게 되는 것은 ‘솜사탕처럼

하얀 구름 잠에서 깨어난 새 소리’(“푸른밤을 여행하다”)처럼,

언제나 거기 있었지만 미처 몰랐던 풍경의 발견이다.

진솔한 걸음 뒤 찾아온 소박한 깨달음은 ‘내 안의 깊은 곳 흔들릴 때마다,

당신은 항상 거기에’(“그는 항상 내안에 있네”) 동반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며,

이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행복이라는 이름의 무지개’에

‘다시 다가설 수 있는 희망’(“행복하지 않은지”)을 발견한 기쁨과 감사이다.

슬픔과 고통을 모른 체 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 얻는 평화와 기쁨에 대해 담담하게 읊조리는

이 한 장의 앨범을 통해,

우리는 현재 고단한 시간을 어렵게 걷고 있는 우리들 모두에게 수선스럽지 않은,

그러나 진정을 담은 위로를 선사할 수 있을 것이다.  (2009년03월10일 기린그림 님의 리뷰 )